최근 1달 넘게 수술 후 무척 고통스러운 날들을 보내고 있다. 뜻하지 않는 수술로 몸과 마음이 함께 큰 애를 먹고 있다. 덕분에 또 다른 세계에서 많은 생각들을 하게 되었다.
항상 그렇듯이 힘든 일이 닥치면 결국은 마음의 정리로 가닥이 잡힌다. 그 어떤 것도 해결의 실마리를 제공하지 않는다. 내 마음에서 시작해서 내 마음으로 끝나는 것이 세상의 모든 이치라는 것을 깨다고 있다. 그리고 언제부터인가 그 이치를 고통을 대신하는 언덕으로 삼고 있다.
이번 일로 더욱 많은 것들을 느끼고 있다. 나의 한계와 세상의 한계라고 할 수 있을까? 다르게 말하면 나의 한계가 명확하면 세상도 한계가 있다는 것이리라. 나의 한계는 곧 인간의 한계이다. 최소한 육체에 있어서는 그렇다. 그런데 그 육체의 한계를 극복하게 해주는 것은 정신이다. 몸과 마음은 하나이지만 별개로 느낄 때도 있다. 지금과 같은 나의 고통과 경험이 그렇다.
몸은 느끼는 한계
내 몸이 아프면 모든 의욕이 사라진다. 마음을 다잡지만 한계가 있다.
살아가는 인생도 마찬가지다. 그렇게 느낀다. 어렸을 때, 그리고 한참 젊었을 때, 그때는 무서움도 없었다. 무서움이 없다는 것은 공포가 없다는 것이다. 피가 끊는다는 말이 실감이 나지 않았다. 젊었을 때는 그가 피가 끊어 오르는 현상인지 몰랐다. 하지만 요즘 들어 청춘의 피가 끊어 오른다는 말의 의미를 실감하고 있다.
청춘의 반대는 시든다는 것이다. 이 세상 모든 생명은 영원한 존재가 없다. 어떤 생명체이고 존재하게 되면 다시 사라지게 된다. 다시 말하면 조금씩 시든다는 것이다. 다만 자신의 생명을 종족으로 보존할 뿐이다. 그렇게 생명체는 존재하고 있다.
그런데 이상하다. 왜 왕성한 청년기에 생명체는 존재의 한계를 느끼지 못하는 것일까? 겁도 없고 무서움이 없다는 것은 존재의 한계를 느끼는 못하는 것이다. 그래서 그 순간에 피가 끊는 것이다. 청춘의 시절이 그렇다. 몸과 존재의 한계를 느끼지 못하는 것이다.
몸은 점점 시들게 된다
몸은 언젠가는 시들게 된다. 이건 자연의 법칙이다. 인간의 힘으로 어찌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다. 다만 생명을 연장할 수 있어도 영원히 존재할 수는 없다.
언제부터 몸에 대한 생각이 많아졌다. 걱정과 염려라는 말이 더 맞다. 때로는 이것저것 온갖 걱정으로 하루를 보내는 날도 많아졌다. 걱정이 걱정을 부른다는 말이 딱 맞다. 이러다가는 하늘이 무너지는 것을 걱정해야 할 팔자다.
이것은 무엇인가 잘못되었다. 지나치게 이기적인 발상이다. 이 세상에는 나만 존재한다는 생각이다. 무척 잘못된 생각이다. 그러니 대가를 치르는 것이다. 바로 ‘걱정’이라는 고통이 그것이다.
생각해 보면 나는 천년만년 살것처럼 살아왔다. 나의 아픔은 크고 남의 아픔은 적게 느꼈다. 그리고 그것에 대한 마안함은 커녕 당연하게 여기고 살아왔다. 심지어 가족의 아픔도 크게 돌보지 못했다. 생각해 보면 정말 그렇다. 나 혼자만 잘나서 살아온 세월이다. 그러다 갑자기 시들어 있는 내 자신을 발견하게 되었다.
너무나 비겁하게도 이제야 발견하게 되었다. 내 자신이 시들고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고 나서야 남들이 조금씩 보이기 시작한다. 그런데 어쩌면 이것마저도 나의 욕심일 수 있다. 한계를 인정할 수 없다는 이기적 욕심일 수 있다.
나를 깨우쳐야 한다
몸의 건강하지 못하면 마음이 병든다. 그런데 반대의 경우도 가능한다. 건강하지 못한 몸을 마음이 치료한다. 생각해 보면 건강하지 못한 몸은 마음에서 생긴다는 것이다.
건강도 세상 사는 이치와 똑같다. 준비하지 않으면 예상치 못한 불행이 닥친다. 몸을 학대하는 것은 마음이 정갈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이제는 나를 깨우쳐야 한다.
나를 깨우친다는 것은 무엇을 뜻하는가?
몸과 마음을 비우는 것이다. 욕심을 비우는 것이다. 몸에 대한 욕심, 소유에 대한 욕심, 마음에 대한 욕심을 비우는 것이다. 한마디로 나를 비우는 것이다.
세상은 끊임없이 변하고 있다. 잔잔하게 흐르는 물과 같다. 길을 걷고 있다면 그 물결의 흐름이 느껴질 수 없다. 그렇다. 그저 조금 흐르고 있을 뿐이다. 그리고 나는 무심히 쳐다보고 지나치고 있다. 하지만 생각해 보았는가? 불과 며칠도 지나지 않아 섬진강을 흐르던 물길은 어느새 서해 어딘가 바닷가에 당도해 있을지 모른다. 그리고 조금 지나 태평양 어딘가 망망대해 파도에 휩쓸리고 있을지 모른다. 아니 모르는 게 아니라 그렇다.
그런데 나는 이러한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모든 생명은 시들고 결국 사라지는데 이 엄연한 사실을 인정하려 하지 않는다. 나의 존재도 태평양 파도처럼 천년만년 강으로 바다로 흐를 수 있다고 생각한다. 이 얼마나 황당하고 이기적인 욕심인가!
그러니 이제는 나를 깨우쳐야 한다. 처절하게 매일 달라져야 한다. 욕심을 버리고 나를 비워야 한다. 그래야 몸도 건강하고 마음도 건강하다. 확실한 것은 몸이 아프면 마음도 아프다. 마음이 아프면 몸도 아프다. 그래서 느낀다. 몸과 마음은 언제나 하나이다.
몸과 마음은 하나여야 한다
이번에 수술을 하고 느끼는 것은 억울한 고통이다. 나의 잘못이 아니라고 지금도 생각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럴 수도 있다.
억울한 일은 이번에만 겪었는가? 그렇지 않다. 살아가면서 더 억울한 일은 수없이 당하고 산다. 그리고 남들도 나에게 억울한 일을 당했을 수 있다.
그렇다면 문제는 무엇일까?
바로 내 자신이다. 몸을 잘못 간수하고 함부로 대한 내 잘못이다. 또한 마음을 잘못 간수하고 관리한 내 잘못이다. 몸과 마음은 하나여야 한다는 사실을 항상 간과하는 있는 내 자신의 문제이다.
이제는 조금 다른 삶을 살아도 된다. 버리고, 비우고, 그리고 소유하지 않는 삶을 살아도 된다. 체념하고 포기하는 방법도 괜찮다. 차라리 그게 낫다. 채우고, 가지고, 유지하는 삶은 이제는 버려야 한다. 매일 새로운 나로 살아가는 삶을 살아야 한다. 그것이 내가 사는 길이다.